이스라엘의 전격적인 대규모 공습으로 이란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가운데, 하메네이 정권은 강경 보복도, 핵 합의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가자전에서 비롯된 장기 소모전과 최근의 공습으로 이란은 군 수뇌부가 궤멸됐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지역 연계 무장단체들도 무력화되면서 반격할 실질적 수단이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오히려 핵무기 개발이라는 강경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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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WANA/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지난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을 기점으로 이란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서 체계적으로 제거해왔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타격한 데 이어, 최근에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까지 겹치며 이란의 지역적 동맹 축이 붕괴됐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최근 공습은 이란군 참모총장을 포함해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며, 이란의 전략적 대응능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강경 보복에 나설 경우 미국의 직접 개입까지 촉발할 위험도 있는 만큼, 하메네이 정권은 심각한 외교적 고립과 군사적 무력 속에서 신중한 결정을 강요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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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 상공으로 발사되는 방공미사일 [WANA/로이터=연합뉴스]

반면, 핵무기 개발이라는 길은 여전히 이란 강경파들의 유일한 카드로 남아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더 이상 '좋은 선택지'가 없는 상태라고 평가했으며, 뉴욕타임스(NYT) 역시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 핵무기를 전략적 억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농축 우라늄의 순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존스홉킨스대 나스르 교수는 "이란은 결코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노선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의해 핵시설이 이미 크게 파괴된 상태에서 추가 건설과 고도화에는 상당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다시금 이스라엘의 후속 공습을 불러올 수 있어 리스크도 크다.

결국 이란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역내 친미 국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상황을 진정시키는 '우회 전략'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는 이란 지도부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트럼프와 친분이 있는 국가들과 물밑 접촉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형식적인 보복 이후 체면을 살리고 분쟁을 관리하려는 시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사이버 공격이나 위임군 배치 등 제한적인 저강도 반격을 통해 내부 결속을 도모하면서도 전면 충돌은 피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번 사태는 이란에게 있어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타협 어느 쪽도 쉬운 선택지가 되지 못하는 외통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핵무장이라는 초강수조차 실현 여건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하메네이 정권은 내부 강경파의 눈치를 보며 외부에는 전략적 혼선을 유도하는 외줄타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미국 대선 이후 중동 정세의 방향에 따라 이란의 전략 변화가 예상되며, 향후 몇 주간 이란의 핵개발 움직임과 트럼프 측과의 접촉 여부가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