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2025년 12월 중순 러시아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을 본격화하며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정전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이미지=라임저널) 푸틴 향한 ‘최후의 일격’ 준비한 우크라이나…에너지 전쟁으로 러시아 숨통 조인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카스피해(Caspian Sea) 일대 러시아 해상 석유 생산 시설을 타격했다. 이는 러시아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첫 해상 시추 시설 공격으로, 전쟁 자금의 핵심 원천을 정면으로 겨냥한 조치다.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은 전쟁 수행에 기여하는 모든 러시아 기업은 합법적 군사 표적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공격은 단발성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초부터 러시아 정유 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해왔으며, 2025년 8월 이후 그 범위를 파이프라인, 수출 터미널, 유조선, 해상 시추 시설로까지 확장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전략적 전환이다.
무력 분쟁 데이터 분석 기관 ACLED에 따르면 2025년 11월은 전쟁 발발 이후 단일 월 기준 가장 많은 공격이 발생한 시점이다. 이는 평화 협상 국면과 동시에 러시아가 전선 일부에서 진격을 이어가자, 우크라이나가 대응 수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로 해석된다. 서방 동맹국들 역시 글로벌 원유 공급 과잉으로 유가 상승 부담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세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고 있다.
RBC 캐피탈 마켓츠(RBC Capital Markets)의 헬리마 크로프트(Helima Croft)는 우크라이나의 전략을 “러시아 병력 모집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수익이라는 ATM을 차단하려는 체계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높은 급여와 입대 보너스를 통해 병력을 유지해왔는데, 그 재원 자체를 흔들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8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우크라이나는 최소 27곳의 러시아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이는 올해 초 7개월 동안의 공격 횟수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11월 한 달에만 정유소 14곳, 수출 터미널 4곳이 공격을 받았다. 특히 로스네프트(Rosneft)가 소유한 사라토프(Saratov) 정유소는 8월 이후 최소 8차례 피격되며 정상 가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케플러(Kpler)의 정유 분석가 니킬 두베이(Nikhil Dubey)는 과거의 간헐적 타격과 달리 이제는 정유소가 완전히 복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속적 공격 단계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핵심 병목 설비를 반복적으로 파괴해 장기 가동 불능 상태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반복 공격은 러시아 산업 전반에 구조적 손상을 남기고 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Carnegie Russia Eurasia Center)의 세르게이 바쿨도프(Sergey Vakulov)는 대형 화재와 고열이 금속 구조물에 누적 손상을 남기며, 공장의 기본 프레임 자체를 장기간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표적은 국내 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 투아프세(Tuapse), 우스트루가(Ust-Luga) 등 러시아 주요 수출 항구가 반복적으로 공격받았고, 헝가리로 연결되는 드루즈바(Druzhba) 파이프라인도 다섯 차례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던 헝가리조차 공식 항의에 나섰다.
11월 말에는 카자흐스탄산 원유의 80%를 수송하는 카스피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이 이틀 연속 공격을 받았다.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엑슨모빌(ExxonMobil), 셰브론(Chevron), 에니(Eni) 등이 공동 소유한 핵심 수출로다.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에너지 수출 전반을 압박하는 흐름은 분명해졌다.
해상에서도 공격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해상 드론을 이용해 제재 대상 유조선을 타격했으며, 이에 대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이를 해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튀르키예는 항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사를 모두 소환했다.
우크라이나가 공세를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의 태도 변화가 있다.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8월 말 “침략자의 영토를 공격하지 않고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러시아 본토 타격을 사실상 용인했다. 유럽 역시 우크라이나의 패배가 단기간 내 자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인식으로 전환했다.
에너지 가격 환경도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하락하면서, 과거보다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에 대한 서방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작전 자유도를 크게 넓혔다.
러시아의 내구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러시아 정유소의 원유 처리량은 전년 대비 약 6% 감소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연료 부족으로 주유소 대기 행렬이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연말까지 휘발유 수출을 금지했고, 벨라루스에서 정제한 연료를 역수입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까지 도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의 석유 수출 수익은 2022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11월 러시아의 석유·가스 관련 세수와 관세 수익은 전년 동월 대비 약 3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상황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사용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푸틴에게 군사적·정치적으로 중대한 충격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략은 명확하다.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을 떠받치는 에너지 수익을 붕괴시키고, 협상 테이블에서 양보를 강제하겠다는 계산이다. 단기 타격을 넘어 장기 구조 손상을 노리는 이 에너지 전쟁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그리고 러시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향후 전쟁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자료: CNN, ACLED, RBC Capital Markets, Kpler, International Energy Agency, Carnegie Russia Eurasi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