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이 무지개빛으로 물든 하루였다. 2025년 6월 14일, 서울 종로와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6회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외치는 자리가 되었고,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계는 별도 집회를 통해 맞섰지만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현장을 찾은 수천 명의 참가자들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 아래 퍼레이드를 벌이며 거리를 행진했고, 다양한 부스와 퍼포먼스로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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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퀴어퍼레이드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4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제26회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을지로 입구까지 행진하고 있다. 2025.6.14 hwayoung7@yna.co.kr
행사는 오후 4시 30분경 종각역을 출발해 명동성당, 서울광장을 지나 을지로입구역까지 이어졌고, 경찰 추산 7천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얼굴과 몸에 무지개 타투를 붙이고, 프라이드 플래그 색으로 장식한 꽃다발을 들고 거리를 가득 채웠다. 각종 부스에서는 성소수자 단체 외에도 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외교공관과 전국의 대학 동아리, 민주노총, 전농 등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해 행사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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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4일 서울시의회 인근에서 열린 거룩한방파제, 11차 통합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혼 합법화 반대'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5.6.14 mon@yna.co.kr
주목할 점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불참에도 불구하고 일부 직원들이 '앨라이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해 인권위 결정을 비판하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는 점이다. 부스를 연 이들은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위한 여정에 인권위가 함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인 질병관리청도 HIV 예방 정보를 제공하며 처음으로 부스를 열었고, 불교계 성소수자 모임 '불반'의 홍보 활동도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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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 보며 동성애 반대 외치는 종교인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4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행진하는 제26회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을 향해 종교인이 동성애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25.6.14 hwayoung7@yna.co.kr
반면, 기독교계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거룩한방파제' 주최로 '통합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퀴어문화축제에 맞선 맞불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동성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외쳤고, 일부 참석자는 "동성애는 죄"라고 행렬 주변에서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집회 간 직접적인 물리 충돌은 없었으며, 일부 교회는 오히려 퀴어축제 부스를 차리고 성소수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이중적 풍경도 함께 연출됐다.
행사에 참여한 기독교인 '우산'이라는 활동명으로 불리는 참가자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전하는 데 있다"고 밝히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태도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성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균열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퀴어퍼레이드는 수적 규모나 상징성, 그리고 사회 각계의 참여 폭에서 그 어느 해보다 확장된 양상을 보였다. 반대의 목소리와 맞불 시위는 존재했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각자의 입장을 표현한 채 마무리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 문제를 놓고 여전히 격렬히 대립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표현 공간과 평화적 공존의 가능성을 여전히 모색 중임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존재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외침은 한국 사회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변화의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