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이 기금형 제도 전면 확대 추진으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국회는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4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의 지형을 바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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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PG)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90% 이상이 계약형으로 운영된다.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구조지만, 전문성이 부족해 수익률은 낮고 수수료만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방치형 연금'이란 비판이 컸다. 이에 반해 기금형은 적립금을 모아 전문기관이 운용하기 때문에 위험 관리와 분산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이미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을 통해 기금형 모델의 성과를 확인했다. 푸른씨앗은 2022년 출범 이후 불안정한 금융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국민연금이 -8.28% 손실을 본 해에도 2.45%의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2023년 6.97%, 2024년 6.52%, 올해 상반기에는 7.46%를 달성했다. 이는 전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성과다.

전문가들도 기금형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최경진 경상국립대 교수는 “전문가 운용이 개인 선택보다 수익률 제고에 유리하다”며 푸른씨앗을 긍정적 사례로 언급했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수익률 증대가 시급하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현재 기금형은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는 이를 모든 사업장 근로자로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과 박민규 의원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근로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종사자도 기금형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금형 확대가 금융기관 간 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내다본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수수료를 인하하고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메기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법안 통과 여부에 따라 기금형 퇴직연금이 국민 노후자산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