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정책국장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외환 거래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ESWC) 발표에서 블록체인 기반 교환이 자본 유출 통로를 열어줄 위험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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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정책국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 국장은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생겨도 글로벌 금융에서 달러가 가진 지배적 위상 때문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여전히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의 99%가 달러 기반이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의존도를 줄여 통화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사기, 자금세탁, 불법 거래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상자산 범죄의 63%가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발생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지갑의 익명성과 국경 초월 특성이 통제망을 우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율 변동성이 크고 자본 유출에 취약한 국가일수록 통화 주권과 금융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외환거래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도 불법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막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수십억 건에 달하는 일상 거래를 정부가 전면적으로 감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맞춤형 규제’를 제안하며, 코인의 합법적 사용 이력을 점수화해 꼬리표를 부여하고, 은행 시스템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법 기록이 있는 지갑에서 나온 코인은 할인 거래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방식이다.

신 국장은 BIS 고위직으로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제도의 신뢰를 지키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 단일 가치라는 사회적 합의를 깨뜨린다”며 “중앙은행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도 발전의 촉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세션에서 윤성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실장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기반 예금토큰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을 소개했다. 그는 CBDC가 더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 생태계를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이를 통해 더 포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민간형 디지털 자산의 확산 속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주도하는 CBDC 모델이 금융 질서와 자본 흐름 안정성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앞으로 스테이블코인과 CBDC를 둘러싼 규제와 제도 설계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가 금융시장 안정성의 핵심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