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약 4천억 달러(55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과 일본처럼 미국이 요구하는 '15% 상호관세' 인하 조건을 맞추기 위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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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북부 지룽 항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대만 언론 연합보와 중국시보는 5일, 궈즈후이 경제부장이 전날 가오슝에서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궈 부장은 정밀기계, 금속가공, 플라스틱 등 주요 업계 인사들과 만나 미국의 관세 인상과 환율 변화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미국과 20% 상호관세에 대해 계속 협상 중”이라며, “한국과 일본은 각각 5,500억 달러와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했고, 대만도 최소 4,000억 달러 수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은 대만이 이미 미국 측에 이 같은 투자안을 제안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대만 경제부는 즉각 “이는 정부의 공식 약속이 아닌 참고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미국과의 협상 진행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발언은 아니며, 협상의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만 언론은 미국이 대만의 '15% 관세 인하' 요청을 수용하기 위한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5,0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대미 투자

폭스콘의 미국 공장 자동화에 1,000억 달러 추가 투자

미국산 소고기·돼지고기 전면 수입 허용

미국산 자동차 연간 10만 대 수입 및 관세 인하

미국 내 TSMC-인텔 합작 법인 ‘ASMC’ 설립 (지분 49:51)

실제로 일부 조치는 이미 실행 수순에 들어갔다. 대만 국영 석유기업인 대만중유공사(CPC)는 미국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600만 톤 구매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는 현재 연간 210만 톤 수준의 미국산 LNG 수입량을 3배 가까이 늘리는 대규모 계약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역시 미국 측의 관세 인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에너지 산업과 제조업 투자 확대, 그리고 무역수지 개선을 동시에 겨냥한 대만 측의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대만의 제안은 미국이 일본·한국과 유사한 조건을 대만에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만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TSMC와 미국 인텔 간 합작 법인 설립이 포함된 것은 기술 공급망에서의 미중 경쟁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대만 내부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대미 투자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에 안착할 기회”라고 보는 반면, “과도한 양보는 대만 경제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대만 간 관세 협상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4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미국-중국 간 반도체 및 첨단산업 경쟁 구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