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간의 관세 협상이 본격적으로 가열되고 있다. 미국 측은 소고기 수입 규제부터 구글 정밀지도 반출 제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요청까지 다양한 요구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에 대한 신중한 대응과 동시에 관세 철폐를 위한 설득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협상 마감 시한은 7월 8일로 다가왔고, 정부 최고위급 결단의 시간이 임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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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서울=연합뉴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왼쪽부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5.6.24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진행된 한미 고위급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가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쏟아졌다. 통상교섭본부장 여한구는 6월 22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상무부 장관,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각료급 협상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 수입 규제 완화와 구글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 해소, 그리고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등 민감한 이슈들을 조목조목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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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 버검 국가에너지위원회 의장 만나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서울=연합뉴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25 27(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부 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은 이같은 비관세 장벽이 자국 상품의 한국 진입을 막고 있다며, 이를 해소할 경우에만 관세 철폐 등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지는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참여를 한국 측에 요청하며 에너지 분야에서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에너지 담당 수장 더그 버검은 여한구 본부장과 회담에서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에너지 프로젝트는 알래스카"라고 직접 언급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미국 상품 구매 확대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이미 미국의 최대 소고기 수입국이라는 점과 FTA 체결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세 철폐를 설득하고 있다. 특히 철강, 자동차 등 공급망이 긴밀히 얽힌 품목에 대해서는 상호 관세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하며 미국 측에 유연한 대응을 요청했다.
문제는 미국이 관세 협상 마감 시한을 7월 8일로 설정해 놓았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선의 협상국'에게만 이 유예 시한을 선택적으로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7월 내 관세 협상의 윤곽이 어느 정도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 디지털, 제조업 등 각 분야의 국내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의견 충돌도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알래스카 LNG 참여 문제는 향후 사업성이 불확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대통령 차원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일부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반드시 국민 설득과 국내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미국과의 관세 갈등을 근본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면서도, 이를 위해선 한국 측도 '줄 카드'를 명확히 결정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연구원은 "본격적인 주고받기 협상 국면에 들어섰다"며 "7월 중 대통령의 결심과 정상회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향후 한국 경제의 무역 환경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한 번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자국의 경제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무역 동맹으로서의 협력도 지속할 수 있는 해법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