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공지능(AI) 인프라의 핵심인 데이터센터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소수 국가에 집중되며 '디지털 제국주의'가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 150개국 이상은 AI 데이터센터가 전무해 국가 경쟁력에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으며, AI를 둘러싼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대응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심 인프라와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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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주 구글 데이터센터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인공지능 시대의 본질은 알고리즘이 아닌 '컴퓨팅 권력'에 있다는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보도를 통해 AI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센터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불균형 속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디지털 격차’를 넘어서 ‘패권 격차’로 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AI 특화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을 포함해 고작 32개국뿐이며, 나머지 150개국 이상은 관련 인프라가 전무한 상태다. 미국은 단일국가 중 가장 많은 26개의 AI센터를, 중국은 22개를 확보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8개에 기타 유럽 국가 8개까지 포함해 36개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과학 연구, 산업 성장, 국가 안보 등 전방위적 차원에서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AI센터 구축에는 수십억 달러가 소요되며, 전력, 냉각, 인력 등 인프라 전반에서 막대한 자원이 요구된다. 특히 엔비디아 칩과 같은 고성능 반도체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제한적이고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 저개발국은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인프라 접근 제한은 개발도상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과 연구개발 활동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NYT는 이 같은 AI 인프라의 집중이 글로벌 패권 질서에도 구조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외에도 각각 63개와 19개의 해외 AI센터를 운영 중이며, 이들 국가의 기업은 전 세계 AI 연산작업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데이터센터를 장악하고 있다. 결국 전 세계는 AI를 매개로 미국과 중국에 각각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으며, 디지털 주권 상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유럽연합은 2천억 유로를 투입해 독자적인 AI 인프라 건설에 착수했으며,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연합도 ‘주권 AI’를 목표로 자국 내 AI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독립적 AI 인프라 구축에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의 기술과 장비, 자본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옥스퍼드대 빌리 레돈비르타 교수는 "AI 시대의 석유는 컴퓨팅 파워이며, 이를 장악한 나라가 미래의 패권을 거머쥔다"고 경고했다.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혁신은 찬란하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가 태동하고 있다. 전통적인 무기 대신 반도체와 알고리즘, 전력망과 데이터센터가 권력의 도구로 작용하는 시대다. 국제사회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국가가 아닌, 기술주권을 확보한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 협력과 규범 정립에 나설 시점이다. 데이터센터 없는 150개국에게 AI의 미래는 아직 닿지 않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