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사흘 만에 물에 녹아 완전히 사라지는 차세대 고성능 메모리 소재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정보 저장 능력을 갖춘 동시에 자연 분해되는 전자소자 기술로, 전자폐기물 문제 해결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체내 삽입형 의료기기나 일회용 스마트 헬스케어 장치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실용성까지 갖춰 향후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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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잎 위에 위치한 소자가 72시간 내 물속에 완전히 녹아 없어지는 모습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연구는 KIST의 조상호·주용호 선임연구원이 이끄는 공동연구팀이 주도했다. 연구팀은 유기화합물 TEMPO와 생분해성 고분자인 폴리카프로락톤(PCL)을 결합한 새로운 분자구조를 설계해, 정보 저장과 자연 분해 기능을 동시에 구현했다. 기존의 분해형 전자소자가 정보 저장 기능이 약하거나 기계적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한 셈이다. 개발된 소자는 트랜지스터 성능의 핵심 지표인 켜짐-꺼짐 전류 비율이 100만 배 이상으로 높으며, 데이터는 최소 1만 초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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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물속에서 사라지는 생체적합형 고성능 메모리 소자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한 이 소자는 반복 사용이나 구부림에도 뛰어난 내구성을 보였는데, 250회 이상 동작하거나 3천회 이상 휘는 실험에서도 성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 보호층의 두께를 조절함으로써 소자의 분해 시작 시점을 제어할 수 있으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속에서 72시간 이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전자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체내 삽입 후 수술 없이 자연 소멸되는 의료기기로의 응용도 가능하다.
조상호 연구원은 “이번 성과는 고성능 유기 메모리 소자에 물리적 소멸 기능을 통합한 세계 첫 사례”라고 밝히며, 향후 자가 치유, 광반응 기능 등 다양한 지능형 기능을 결합한 ‘지능형 소멸 전자소자’로의 발전 가능성도 언급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28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 인터내셔널 에디션'에 게재되며 기술의 독창성과 실용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 기술은 고성능과 생분해성을 모두 갖춘 새로운 개념의 전자소자로서, 기존의 ‘쓰고 버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 후 자연 소멸’이라는 친환경적 전환을 이끌 수 있는 핵심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KIST의 이번 연구는 단순한 소재 개발을 넘어 차세대 전자기기의 방향성을 제시한 선도적 사례로, 생체전자, 환경기기, 군사용 일회용 센서 등 전방위 확장이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