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이 한국이 대북 방어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며, 국방비도 GDP 대비 5%까지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사실상 동맹국에 안보 비용을 떠넘기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안보 전략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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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 미 국방차관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콜비 차관은 7월 31일(한국시간) 한미 국방장관 통화 직후 SNS를 통해 "한국은 북한에 대한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으며, 국방 지출 면에서도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은 공동 위협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략적으로 지속 가능한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며 한국의 방위 분담 확대를 강조했다.
콜비 차관의 이 같은 발언은 8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미리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북 방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 언급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군 전략자산을 재배치하는 대신, 한반도에서는 한국군이 재래식 전력을 바탕으로 독자적 방어를 강화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지난 3월 발표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와 미국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명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 등 제2 위협국에 대한 방어는 동맹국들이 자체적으로 맡는 안보 전략을 구상 중이다.
콜비 차관은 과거 민간 시절부터 ‘확장억제(핵우산)는 유지하되, 재래식 전력은 한국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해왔다. 차관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이 같은 기존 입장을 정부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국방비 지출’ 언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에게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비로 쓰도록 요구해왔다. 이 기준을 아시아에도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6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 역시 GDP 5% 수준의 국방비 지출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의 국방예산은 61조2천469억원, GDP 대비 2.32% 수준이다. 트럼프 정부의 요구대로라면 국방비는 현재의 두 배 이상인 130조원 이상으로 늘어야 한다. 사실상 현실성이 떨어지는 요구이지만, 미국 측은 이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콜비 차관은 또한 ‘동맹 현대화’, ‘전략적 지속 가능성’을 언급하며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 가능성,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카드도 시사했다. 이는 중국과의 대립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대만 등 타 지역까지 작전 범위를 확대한다는 개념으로, 한국 내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이다.
이러한 전략은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작권 환수는 한국이 자국 방어에 대한 실질적인 주도권을 확보하는 절차이지만, 동시에 미국이 방어 책임에서 물러난다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콜비 차관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전략 담당 부차관보로 활동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국방정책 기조를 설계한 핵심 인사다. 현재는 차기 국방 전략(NDS) 수립을 주도하고 있으며, 올해 여름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국방비 증액, 자주 방어 강화, 전략적 유연성 수용 등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한미동맹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안보 전략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