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과의 디지털 무역 협상에서 네트워크 사용료(망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한국이 미국 측의 새로운 압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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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로이터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30일(미국 동부시간) 백악관이 발표한 미·EU 간 공동 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디지털 무역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강화한다"며, EU는 망 사용료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유지하지 않기로 명확히 했다.

망 사용료는 SK텔레콤, KT 등 한국 통신사들이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업체(CP)에게 비용 분담을 요구해온 사안이다. 이 문제는 국내에서도 수년간 논란이 됐으며, 여러 차례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시도됐지만 최종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반면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용자들이 이미 통신사에 접속료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망 사용료는 이중과금이며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도입 추진과 플랫폼 규제법, 클라우드 서비스 제한 정책 등을 대표적인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이후 백악관은 EU와 협상에서 이 문제를 정리했으며, 이제 한국에 동일한 기준 적용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EU는 그동안 한국과 함께 글로벌 CP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번 협상을 통해 입장을 철회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EU가 발을 뺀 이상, 미국이 한국을 집중 타깃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통신업계는 망 사용료 제도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어왔으나, 미국의 압박이 공식화되면서 국회 입법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도 제22대 국회에서 다수의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EU가 명확히 망 사용료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미국은 한국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 정리를 요구할 것"이라며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 문제가 주요 갈등 사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이번 협상을 한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플랫폼 규제 및 통신망 정책 전반에 대해 미국의 지속적인 개입이 현실화될 조짐이다.

앞으로 한국 정부는 EU의 선례를 바탕으로 대응 전략을 조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완화와 통신사 수익 모델의 균형을 놓고 복잡한 외교·통상 협상 과정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