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3조원 규모의 글로벌 빅테크 반도체 수주 계약을 따냈다. 8년 이상의 장기 계약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사상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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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서울=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2025.2.14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계약 대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미국 내 주요 빅테크 기업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생산은 내년 가동 예정인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2~4나노미터(㎚) 첨단 공정을 활용해 이뤄질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적자에 시달려온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본격적인 회복 신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경쟁사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사실상 축소·철수하는 와중에 이뤄낸 대형 수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삼성전자는 28일 공시를 통해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 총 22조7천648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기간은 이달 24일부터 2033년 12월 31일까지며, 지난해 삼성 전체 매출의 7.6%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다. 단일 고객 기준으로는 삼성 반도체 역사상 최대 수준이다.
삼성은 370억달러(약 54조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을 내년부터 본격 가동한다. 당초 2024년 말 4나노 AI칩 생산을 목표로 했으나 고객사 확보 지연으로 가동이 늦춰졌던 상황에서 이번 대형 계약으로 동력이 확보된 것이다.
이번 계약은 삼성의 첨단공정 수율(수정률)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4나노 및 2나노 공정 개선을 통해 신규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향후 CIS 이미지센서, 테슬라 AI칩 등의 공급 확대가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업계는 테슬라가 옵티머스 로봇과 자율주행차용 AI 칩에 삼성의 첨단 공정을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도 삼성의 첨단 공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번 수주로 파운드리 사업의 적자 탈출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2025년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4조6천억원이지만, 반도체를 포함한 DS부문은 1조원 미만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그 주요 원인이 파운드리 사업의 지속적인 적자라는 점에서 이번 계약은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가 67.6%로 압도적 1위다. 삼성전자는 7.7%, 중국 SMIC는 6%로 삼성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한편, 삼성의 이 같은 확장 행보는 파운드리 구조조정에 나선 인텔과 대조된다.
인텔은 최근 독일과 폴란드 신규 공장 건설을 취소하고, 베트남·말레이시아 라인을 통합하는 등 사실상 수요 확정 전까지 투자를 줄이는 보수적 전략으로 전환했다.
2분기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 영업손실은 31억7천만달러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글로벌 대기업이 삼성전자와 장기 계약을 체결한 것은 단순한 수주가 아니라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의 징표”라며 “TSMC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인텔의 이탈 속에 삼성의 위상이 주목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계약은 삼성전자가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미국과의 협력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추가 고객사 확보 여부에 따라 삼성 파운드리의 실적 반등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