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상한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착한 딸 증후군'
미국 심리상담사가 엄마와 딸의 관계 조명한 심리학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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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대회를 준비 중인 엄마와 딸 [신화=연합뉴스]
엄마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잔소리도 '나를 위한 말'이라며 삼켜온 딸들이 있다. 겉보기엔 효녀 같지만, 속으로는 자책과 혼란 속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미국 심리치료사 캐서린 파브리지오는 이를 '착한 딸 증후군'이라 정의하며, 문제의 본질은 딸이 아닌 엄마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파브리지오는 신간 『착한 딸 증후군』에서 엄마의 지시와 간섭, 감정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자아를 잃어가는 딸들의 현실을 조명했다. 특히 '항상 자기 말이 옳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으며', '딸의 선택을 무시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딸들은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착한 딸일수록 엄마의 말과 눈빛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갈등이 생기면 자신을 먼저 탓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딸의 감정과 자아가 억눌리고, 궁극적으로 우울증과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파브리지오 자신도 그런 딸이었다. 엄마의 뜻을 따라 심리학을 전공하고, 늘 순응적인 태도로 살아왔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엄마의 기대에 응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우울증에 빠졌고, 더는 엄마 곁에 머물 수 없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엄마에게서 독립했다. 뒤늦은 결정이었지만 그 선택은 자아를 되찾는 첫걸음이 됐다. 그는 "독립은 고통스러웠지만 자유를 얻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은 단순한 모녀 갈등을 넘어, 여성의 자아 확립과 심리적 해방이라는 주제를 던진다. 파브리지오는 "딸이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거나, 엄마의 기대를 평생 짊어지는 관계는 불공정한 계약일 뿐"이라며, "진짜 독립은 적절한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엄마들에게도 쓴소리는 이어진다. 그는 "헬리콥터 엄마들은 자녀가 12살쯤 되면 독립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자녀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경험으로 흡수하며, 성인이 된 후에도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녀는 ‘평생 갚아야 할 빚’ 같은 부담을 떠안게 된다.
‘착한 딸’이란 말 뒤에 숨은 정체는 결국 순종과 자책, 그리고 자기희생이다. 저자는 '건강한 모녀관계란 각자의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위한 헌신이 결국 통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모녀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