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 밥을 퍼주는 편의점이 있다. 컵라면 하나만 사면 밥과 계란, 콩나물을 무한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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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콩나물을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신사동 'CU편의점'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CU편의점'에는 컵라면이든 봉지라면이든 하나만 사면 밥과 콩나물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2025.7.23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CU편의점 점주 이시원씨(56)는 매일 밥을 짓고 콩나물을 무치고 계란을 삶는다. 정해진 규칙도 없다. 라면을 사지 않아도 밥과 반찬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편의점이라기보다 작은 식당, 혹은 청년 쉼터 같은 이 공간은 이제 소문이 퍼지며 동네 직장인과 청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누군가는 사장님을 ‘엄마’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밥집보다 따뜻하다”고 말한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4시, 편의점은 여전히 붐볐다. 컵라면을 고른 손님들이 편의점 안 식탁으로 향하면, 식탁 위엔 이미 밥솥과 콩나물, 계란이 준비돼 있다. 김치를 꺼내는 것도 자유다. 이 모든 재료는 전부 이씨의 사비로 마련된다.
그는 매달 쌀 40㎏ 한 포대를 사서 직접 씻고 밥을 지으며, 15만원 상당의 계란과 김치도 별도로 구매한다. “외식 한두 번 안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젊은 친구들이 밥 못 챙기는 게 더 마음에 걸려요.” 이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편의점 내부엔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있다. 테이블마다 식탁보와 방석, 휴대폰 거치대가 놓여 있다. 벽엔 ‘오늘도 수고했어요’, ‘말하는 대로 이뤄질 거예요’ 같은 문구가 걸려 있다. 건물 외벽엔 요즘 청년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포스터도 붙어 있다.
점포 유리창엔 손님들이 붙인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편의점’, ‘사장님 덕에 하루가 따뜻해졌어요’ 등 감동 어린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씨는 2016년부터 이 자리에 분식집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주변 상권이 점차 쇠퇴하며 작년 문을 닫았고, 이후 편의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공간은 바뀌었지만 “밥 한 끼라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손님 장예진(25) 씨는 “가격이 부담돼서 식당은 잘 못 가는데 여긴 매일 오게 된다”며 “사장님이 챙겨주시는 마음이 고맙다”고 말했다.
최영준(23) 씨는 “계란이나 콩나물 다 돈 주고 사야 하는데, 여긴 그냥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직장인 배한슬(30) 씨도 “청년들이 식사하기 좋은 따뜻한 공간”이라며 미소 지었다.
한 단골 손님은 “이곳은 편의점이라기보단 지역 공동체의 쉼터”라며 “젊은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공간이라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불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따뜻한 밥을 짓고,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신사동 한가운데, 밥 내음 가득한 편의점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