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에 소형모듈원전(SMR) 독자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합의에는 원전 수출 시 막대한 로열티와 물품·용역 계약을 보장하는 조항도 들어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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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전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업계에 따르면 합의문에는 한국 기업이 독자 개발한 차세대 원전을 해외에 수출할 경우 웨스팅하우스가 기술 자립 여부를 검증하도록 규정돼 있다. 검증 결과에 이견이 있으면 미국 소재 제3기관을 통해 최종 판단을 받도록 했다. 이는 한국형 SMR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존 대형 원전의 축소판이라는 논리에서 출발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경우 1기당 약 6억5천만달러(약 9천억원)의 물품·용역 계약과 1억7천500만달러(약 2천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하도록 한 조항도 포함됐다. 이 계약의 유효기간은 50년으로 설정됐다. 업계에서는 원전 1기당 1조원이 넘는 비용이 보장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과정에서 불거진 지재권 분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체결됐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한수원과 한전은 수출에 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합의에 나섰다. 실제로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서는 향후 10년간 연료 공급권을 웨스팅하우스가 확보하는 등 상당한 권익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해 “남는 것 없는 장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전 수주 경쟁에서 저가 전략을 쓰는 관행 속에 막대한 로열티와 일감을 제공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재권 분쟁을 조기에 마무리해 수출 리스크를 제거한 점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반론도 나온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가 일부 과도한 측면은 있을 수 있으나, 50년 계약은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 가능하다”며 “SMR 검증 조항 역시 무조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가 한국 원전 수출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주 성과와 함께 판가름날 전망이다.